인터뷰어: 이안 / 답변: 이안
검정 티셔츠 열두 장에서
레이스 원피스 한 벌로
2016년부터 8년 동안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습니다. 남의 브랜드를 예쁘게 만드는 일이었고, 잘했습니다. 옷장에는 검정 티셔츠 열두 장과 검정 바지 네 벌. 아침에 고를 필요가 없어서 좋다고 생각했어요. 2024년 봄에 알았습니다. 고르지 않는 게 아니라, 고를 힘이 없었다는 걸.
- Q. 번아웃은 어떻게 왔나요?
- 극적으로 안 왔어요. 어느 날 회의에서 "이 컬러 예쁘죠?"라고 말하는데 아무 느낌이 없었습니다. 예쁜 걸 보고 예쁘다고 느끼는 능력이 없어진 거예요. 디자이너한테 그건 끝이잖아요.
- Q. 제주에서 뭘 했나요?
- 아무것도요. 한 달 동안 매일 숲길을 걸었어요. 삼나무 숲, 곶자왈, 오름. 옷은 검정 티셔츠. 숲에서 검정 옷을 입으니까 내가 그림자 같더라고요.
- Q. 할머니 옷장 얘기 해주세요.
- 제주 다녀와서 외할머니 댁에 갔어요. 옷장 정리를 도와드리다가 70년대 레이스 원피스를 꺼냈는데, 할머니가 "네가 입어라" 하셨어요. 입고 마당에 나갔는데, 기분이 예뻐졌어요.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예쁘다는 감각이 돌아온 순간이었습니다.
- Q. 그래서 옷을 팔게 됐다?
- 바로는 아니에요. 그 원피스를 입고 사진을 찍어 올렸더니 "어디서 샀냐"는 DM이 서른 개 왔어요. 파는 데가 없으니까, 비슷한 걸 찾아 모으기 시작했고, 그게 옷장이 되고, 옷장이 스토어가 됐습니다.
- Q. 이 홈페이지는 왜 이래요?
- 8년 동안 남의 브랜드만 만들었으니, 내 건 마음대로 하고 싶었어요. 옷은 숲인데 파는 사람은 도시여도 되잖아요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