왜 연구원이 회사를 나와 선크림을 만들었나요?
답부터 말씀드리면, 제가 바를 수 있는 무기자차가 세상에 없었기 때문입니다.
저는 8년 동안 화장품 회사에서 자외선차단제를 만들던 연구원이었습니다. 이력만 보면 그럴듯하죠. 그런데 저는 동시에 10년차 민감피부이기도 합니다. 유기자차를 바르면 눈이 시리고 볼이 달아오릅니다. 그래서 선택지는 늘 무기자차 하나였는데, 무기자차는 바르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뜹니다.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회백색 얼굴을 문지르며 출근했습니다. 자외선차단제를 만드는 사람이, 정작 자기 얼굴에 바를 자외선차단제가 없었던 겁니다.
회사에서도 여러 번 제안했습니다. 흰색 안료를 그대로 두고 사용감만 다듬을 게 아니라, 출발점의 색 자체를 피부톤 쪽으로 옮기자고요. 번번이 같은 답이 돌아왔습니다. "톤이 들어가면 색조로 분류돼서 복잡해져요." 맞는 말이었습니다. 회사 입장에서는요. 하지만 저는 매일 아침 그 회백색을 마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.
2023년 봄에 사표를 냈습니다. 거창한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, 이 한 가지 가설을 제 손으로 끝까지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. 흰색에서 출발해 지우는 게 아니라, 처음부터 피부톤 가까이에서 출발하면 백탁이라는 문제 자체가 사라지지 않을까.
백탁은 지워야 할 결점이 아니라, 잘못 고른 출발점이었습니다.
그다음 2년은 실패의 기록입니다. 주방 옆 작은 랩에서 마흔일곱 번 제형을 갈아엎었습니다. 3번째 시제품은 색이 예뻤지만 두 시간 만에 밀렸고, 19번째는 차단력은 잡았는데 각질마다 끼었습니다. 31번째쯤엔 '역시 회사 말이 맞았나' 싶은 날도 있었습니다. 그 실패담은 47번째 제형 테스트에서 배운 것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.
47번째 제형이 나온 날을 기억합니다. 발라도 티가 안 나서, 오히려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. 하얗지도, 어둡지도 않고 그냥 제 피부가 조금 정돈된 얼굴. 그게 샌드톤의 첫 제품, 스킨 핏 미네랄 선크림이 되었습니다.
샌드톤은 아직 제품이 하나뿐인 작은 브랜드입니다. 대신 약속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. 여기서 파는 모든 것은 제가 제 얼굴에 매일 바르는 것입니다.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출시하지 않습니다.